서점
어려서 서점은 감당 못할 곳이었다.
서점에서 주로 사 보던 책은 문제집이었다.
지금도 그들 앞에서는 괜히 주눅들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점 가기를 주사 맞으러 병원 가려듯 하니 가벼워져야 할 머리는 더 무거워지고 깨끗해야할 마음은 더 번잡스러워졌다.
그래도 문제집이라도 풀때는 어려운 문제도 화나고 답답하다가도 그 해결 원리를 알고 가슴 시원한 기분이라도 느꼈는데 그 고마움도 잊고 여지껏 살았으니 화나면 계속 화만 내고 답답하면 계속 답답만 하니 이런 미련한 짓 하고는.
얼굴에 시커먼 털이 나고 마음에도 시커먼 털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을때 이러다가는 아주 시커먼 인종으로 다시 변형될 것 같아 서점을 찾았다.
어렸을때도 그랬지만 참 감당 못할 곳이었다.
많은 책들이 나를 원숭이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방황해야 했다.
그랬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는 진짜 원숭이가 되어 있었다.
절망스러웠다.
요즘 같은 시대에 퇴화되고 퇴화되어 아주 교과서에도 없는 그런 인류의 종으로 변해 있다는게 절망스러웠다.
그런 내가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고 다녔는데 왜 뉴스에 나오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예전 기억은 하나씩 떠올려 책에 접근해 갔다.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인간으로 대해줬다.
친구로 여기고 대화하려 했고 먼저 나를 끌어 안았다.
서점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커지고 일부에서는 환호소리도 들렸다.
답례로 인사를 올리는데도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이제 서점은 내 친구들의 아지트이자 궁전이다.
그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더이상 퇴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이 번잡한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